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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정수근 동생 정수성 변호사,나이 아내 부인 아들 정호준 근황

mumonim 2022. 8. 18. 20:30

- 정수근 프로필 이력 경력

이름 본명
정수근(鄭守根 / Jung Sookeun)
출생 나이
1977년 1월 20일 (45세)

고향 출생지
서울특별시
신체 키 몸무게
178cm, 70kg

학력
성동초 - 건대부중 - 덕수상고 - 세한대
포지션
중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5년 고졸연고 자유계약 (OB)
가족관계
동생 정수성

소속팀
두산 베어스 (1995~2003)
롯데 자이언츠 (2004~2009)

국가대표
시드니 올림픽 대표 (1999~2000)

응원가
롯데 시절 : Kylie Minogue - The Locomotion
종교
불교 → 개신교

- 2022년 8월에 전해진 정수근의 근황은?

프로야구 선수 출신 스포츠 해설가 정수근(45)씨가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습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형사6단독 이우희 판사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음주운전·무면허운전)로 불구소 기소된 정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정씨는 지난해 9월27일 오후 10시51분께 경기 남양주시에서 8을 마신 채로 2㎞ 가량 카니발 차량을 운전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적발 당시 정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치를 한참 초과한 0.159%의 만취 상태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2004년에 음주운전 등으로 벌금형, 2010년에 음주운전 등으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2016년에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을 뿐 아니라, 특히 지난해 6월 음주운전 및 무면허 운전으로 입건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의 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과 석 달 만에 이 사건 음주 및 무면허운전을 했다”고 질타했답니다.

그러면서 “음주운전 적발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도 매우 높은 만취상태였으며, 피고인이 주장하는 운전 경위를 고려하더라도 그 운전 경위에 크게 참작할만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 태어난 지 1년밖에 안 된 어린 자녀 등 부양가족이 있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덧붙였답니다.

- 정수근의 선수 경력

- OB/두산 베어스 시절

아직까지도 베어스 역대 최고의 리드오프로 이종욱과 더불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선수이다.리그 최고급의 중견수비,주루센스를 지녔으며 타격도 2할8푼은 쉽게 칠수있는 베어스 사상 최고의 리드오프 중견수 이다.


베어스 시절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의 엄청난 야구센스와 얼빠(...)를 부르는 얼굴를 가졌으며 파워를 제외한 공격, 수비, 주루, 삼박자를 두루 갖춘 호타준족[4]이였다. 특히 4년 연속(1998년~2001년) 도루왕을 할 만큼 빠른 발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분위기 메이커로 방송국에서도 탐낼 만한 쇼맨쉽을 갖추고 있는, 그야말로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선수였다. 도루왕 제조기 김평호가 주루코치로 바로 부임하면서부터 입단 2년차부터 주전 중견수로 자리잡기 시작, 도루 2위를 2번 기록하면서 차세대 대도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종범이 일본으로 이적한 98년부터 도루왕 4연패[8]를 하면서 일약 스타로 등극. 이병규, 박재홍, 제이 데이비스등과 함께 리그의 대표적인 중견수로 자리잡음과 동시에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야구 동메달의 주역이 되었다. 허나 2002시즌을 정점으로 타력이 떨어지는 등 불안요소도 안고 있었다. 다만, 타격이 들쑥날쑥한건 본인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최전성기라 볼 수 있는 1998~2001년에 최소 0.280 이상의 타율은 찍어 주었답니다.

그리고 베어스 시절 팀에서 도루하는 선수라고 하면 정수근이 거의 모든 지분을 먹고 있었다. 그나마 김상호는 주루가 좋았지만 정수근이 데뷔할 즈음엔 클린업 타선으로 가면서 주루 능력이 감퇴했고, 1995년 당시 1번 타자였던 김민호는 타격이 좋지 않았던 데다 9번 타순으로 이동하면서 도루에서 돋보이는 성적을 보이자 못했다. 1999년에 한화에서 건너 온 전상렬은 백업이었기 때문에 주루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진 못했답니다.


하지만 워낙 개구쟁이였던 성격탓에 2003년 하와이 스프링캠프에서는 팀 동료 한태균과 같이 폭력 사고에 휘말리기도 했고 그리고 시즌 중엔 경기 중 멋대로 짬뽕 시켜먹다가 이를 아니꼽게 본 심재학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는 루머도 있었는데 정수근이 직접 부인했다. 시합 전에 짜장면이나 짬뽕을 해장 겸 시켜먹기도 했지만 어떻게 시합 중에 배달을 시키냐는 얘기랍니다. 

어쨋든 상기된 사건으로 두산 프런트의 눈밖에 나게 되고, FA를 앞둔 2003년 잔부상으로 89경기 출장에 그치는 등 하락세가 시작되는 모습을 보인 데다가, 당시 두산은 자금 사정으로 인해 FA를 절대로 잡지않는 성향을 가지고있었다보니[10] 두산은 정수근의 잔류를 포기해 버린다. 그리고 프로 입단 당시에도 대학 입학이 예정된 상태에서 가계약을 깨뜨리고 입단하는 바람에 동생 정수성의 야구인생이 꼬일 뻔한 적도 있었다. 정수근이 프로로 가자 외부에서 압력이 들어와 정수성은 야구를 그만 둘 위기에 놓였지만, 다행히 야구를 계속해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할 수 있었답니다.

이후 두산의 중견수 자리는 김창희-이종욱-민병헌-정수빈으로 그 계보가 이어지고 있답니다.

- 롯데 자이언츠 시절

03년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나고 나자 자연스레 FA시장의 최대어로 떠오르면서 여러 팀의 러브콜을 받았답니다.

원소속팀과 우선협상기간이 지난 후 정수근은 부산의 야구열기에 끌려 부산을 연고로 하는 롯데 자이언츠를 희망했으나 먼저 삼성 라이온즈에게 옵션포함 최대 60억의 오퍼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롯데측에서 전화가 왔으나 대뜸 "우리 구단이랑 계약하실 마음 없으시죠?" 라는 말을 해서 정수근은 황당해 했으나 그래도 롯데 자이언츠 이적을 희망했던지라 협상 테이블에 앉았는데, 삼성에 비해 적은 40억을 제시해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답니다.


그렇지만 정수근은 당시 삼성 감독인 김응용 감독을 워낙에 무서워했던것도 있어, 롯데 쪽과 계속 협상하였고 정수근은 롯데 측에 fa 계약을 하면 좋은곳에 기부를 하고 싶다며 6천만원만 더 얹어주면 롯데로 가겠다고 제안, 결국 FA대박을 터뜨리며 롯데와 6년 40억 6천만원에 계약하였다. 본인은 "한국 최고의 야구열기를 지니고 있는 구도 부산에서 한국 야구의 부흥을 이끌고 싶다"면서 부산 야구팬들의 열화와 같은 환영과 함께 롯데에 입단하게 되지만 이 때부터 그는 끝없는 추락을 겪게 된답니다.

대도 전준호를 연봉과 문동환 위약금 문제[14]로 뻥 차버린 다음에 어정쩡했던 1번 타자 자리를 메우기 위하여[15] 데리고 왔지만, 롯데 시절 커리어를 보면 타율은 0.290 이상을 찍어본 일이 없고 평균 40개 이상 하던 도루는 겨우 20개 남짓으로 줄었으며, 수비 범위마저 급격히 좁아지며 포지션을 좌익수로 변경해야만 했다. 급기야 이적 첫 해에 음주 폭행사고까지 저질러 무기한 출장정지라는 중징계까지 받게 되었다. 그렇게 방황하다 한창 유행하던 바다이야기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07년도엔 이혼까지 당하며 온갖 고난과 악재를 다 당하게 된답니다.

전술했듯이 이적 첫해인 2004년 시즌 초반에는 붙박이 1번타자 중견수로 3할 이상의 타율과 안정된 수비로 팀의 활력소가 되었고 그 시즌 올스타전 MVP에 뽑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시즌이 갈수록 타율이 점점 하락하는 등 성적도 좋지 않은 와중에 음주 폭행 사건에 휘말려 무기한 실격 처분을 받았다. 한달 후에 실격 처분이 해제되어 다시 복귀하긴 했지만 이 사건은 롯데 정수근의 잔혹사를 알리는 서막과도 같았답니다.

또한 2006-2007년까지 다시 롯데 감독을 맡았던 강병철 감독과의 심각한 불화도 한 몫 했다. 강병철 감독은 당시 상대 선발이 좌완이면 좌타자라는 이유로 무조건 9번에 박아넣는 등 이렇듯 강 감독은 정수근의 자존심을 긁어놨고, 정수근의 평소 행색에 대해서도 자주 지적을 했다고 한다. 프로야구 선수에게 헤어스타일이나 귀걸이 등을 지적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귀걸이 등을 하고 다니는 자신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 아프리카 방송에서 증언했답니다.

귀걸이 지적을 시작으로 한번은 정수근이 강병철 감독의 혹독한 훈련에 학을 떼서 꾀병을 부렸는데 피칭머신에 공을 넣는 일을 시켰다고 한다. 또한 정수근이 밝힌 일화중 하나가 전지훈련지에서 어느날 미팅 전 노장진이 갑자기 사라진 일이 있었는데 강병철 감독이 정수근에게 '너는 오늘 훈련하지 말고 노장진 선수를 찾아와라'는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린 게 밝혀졌답니다.


또한 시즌 중 이동을 할때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어가는데 강병철 감독은 정수근이 버스에 탑승을 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출발을 해버린 사실 또한 밝혀져 정수근이 심적으로도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당시 버스에 있었던 이인구에 따르면 누군가가 정수근이 안 탔다고 말을 하는데도 그냥 가버렸다고 하니 앙심이 있었던 듯하다. 결국 정수근은 휴게소 차량 중 방향이 같은 사람에게 부탁해서 버스를 쫓아갔답니다.

거기에 정수근은 1번타자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던 선수라서 9번 타순을 매우 싫어했으며 실제로 성적도 1번타자일 때 월등히 좋았다. 거기다 강병철 감독이 정수근에게 별로 도루를 시킬 의사가 없는 터라 인터뷰 중 수차례 강병철 감독을 직접적으로 까기도 했다. 정수근은 2007년 말 강병철 감독이 물러나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언플을 하며 강병철 감독을 깠다. 그 백미는 "삐꾸 발언". 결국 강병철 감독과 친구였던 한화 김인식 감독에게 자중해라는 지적까지 받았답니다.

참고로 김인식은 두산 감독 재임 시절 내내 정수근과 같은 팀에서 한솥밥을 먹었고 실제로도 지금도 꽤나 가까운 사이다. 정수근도 수차례 인터뷰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김인식 감독을 가장 존경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답니다.

그리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일찍이 김성근 감독을 포함해서 많은 야구계 선배들이 지적했듯이 자신의 나태와 게으름이었다. 그리고 양상문 때부터 풀어지기 시작한 롯데의 팀 분위기를 완전히 놀자판으로 만든 일등공신. 본인은 야구를 하는 내내 김성근 감독을 만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고 했을 정도랍니다.

처음에 올 때는 롯데의 부활을 이끌 선봉장으로 믿어 의심치 않던 팬들도 계속 추락하는 그를 보면서 먹튀, 또는 40억짜리 마스코트라고 욕하기 시작, 정수근은 야구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한창 전성기를 달렸어야 할 시기에 잘못된 지도자와 자신의 나태한 멘탈로 인해 기록에서 손해를 본 건 덤이랍니다.


사실 롯데에서 두산에 비해서 부진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두산에서 평균적으로 타율 0.280 출루율 0.356 장타율 0.355 ops 0.711 wRC+ 96.7 을 기록했는데 롯데에서 평균적으로 타율 0.282 출루율 0.364 장타율 0.358 ops 0.722 wRC+ 100.8 을 기록해서 타격 스탯만 보면 성적은 오히려 더 올랐다. 클래식 스탯이야 사직이 잠실보다 상대적으로 타고 구장이기에 올랐을 수 있지만 파크팩터를 감안한 세이버매트릭스 자체가 더 올랐다. 더군다나 두산시절은 상대적으로 타고 시즌이 많았고 롯데에선 투고 시즌이었으며 정수근 처럼 장타툴이 없고 주루툴만 높은 타입은 잠실처럼 넓은 구장에서 타격 성적도 더 높게 나올 수 있다. 어차피 홈런은 못친답니다.

다만 이건 비율스탯이 그렇다는 말이고 누적에서는 분명 줄어든 모습을 보였는데 그것은 정수근이 감독과의 불화,각종 사건 사고나 부상등으로 출장 자체가 줄어든 탓이 컸다. 두산에서 연평균 467타석 그것도 고졸 1년차때 대수비 대주자로 뛴걸 포함해서 467타석을 소화했는데 롯데에서는 연평균 322타석으로 줄어들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안타나 도루 갯수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던것. 단 도루의 경우 롯데에서는 두산처럼 도루를 많이 지시하지 않았던 탓도 크다. 그리고 애초에 기량 자체도 타격 성적에서만, 그 마저도 극히 미미한 수준의 상승만을 겪었던 반면에 수비력과 스피드 부분에서는 두산 시절에 비해 확실하게 퇴보한 모습을 보였답니다.

2007년에 들어 그는 데뷔 1년차 이후 사상 최악의 모습을 보이며 이대로 다시 올라가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극성스런 롯데팬들에 의해 그는 KBO 올스타전에 뽑히게 되었고, 그 경기에서 역전 홈런을 뽑아내며 미스터 올스타에 뽑히게 된다. 그 때 인터뷰에서 정수근은 "힘든 일로 인해 야구가 싫어지게 되었지만 오늘 다시 야구가 좋아지게 되었다."는 감동적인 멘트를 날렸고 그 이후로 그는 기적같이 부활하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게 된다. 전성기 때보다 발도 느려졌고 수비력도 떨어졌으나 0.250에 불과하던 타율을 0.290까지 끌어올렸으며, 느려진 발을 대신해 어퍼스윙으로 장타율을 올리는 등 정말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답니다.

여담으로 2007년 시즌 중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될 뻔했다고 한다. 이영우+안영명과 정수근의 2:1 트레이드에 대해 당시 한화 감독이었던 김인식과 롯데 감독이었던 강병철 사이에서 얘기가 나왔고,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 한화와의 경기에서 5타수 4안타를 치는 등의 맹활약을 펼치자 롯데 구단 측에서 트레이드를 파토내는 바람에 결국 트레이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24] 실제로도 정수근이 훗날 김인식 감독에게 이때의 이야기를 하자 김인식 감독이 왜 그때 갑자기 잘쳐가지고... 하며 안타까워 했다고 한답니다.

- 은퇴 후는??

- 2019년

5월 14일 아프리카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하여 엄청난 입담을 보여주었다. 당시 편집본 영상들이 유튜브에 올라오자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그 반응을 본 정수근은 개인 인터넷 방송을 고려중이라고 한답니다.

6월 3일 박명환야구TV에 원래 나오기로 했던 게스트 김동주가 방송 1시간전 펑크를 내고 사과방송을 하는 박명환을 보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정수근이 방송도중 출연하여 또 다시 엄청난 입담을 보여주었다. 최근 방송에서 한 얘기들이 화제가 되어 야구관계자들한테 "괜찮겠냐?" 라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하나 시청자들이 즐겁다면 숨김없이 솔직하게 다 말해주겠다고 얘기하였다. 후에 구자운 편에도 출연하여 한국시리즈 우승팀 보너스 지급 기준 등에 대해 설명했답니다.

- 2020년

2월 4일부터 트위치 인벤방송국에서 최광원 캐스터와 마구마구 마토브리그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카드를 설명할 때마다 선수 TMI가 쑥쑥 튀어나오고 매운맛 방송수위로 트위치 시청자들을 열광시키면서 최광원 캐스터를 당황하게 만들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