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트의 시시콜

과거에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는 차기작을 위한 인터뷰를 위해 이말년 부부를 찾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처음 기안84는 “형은 왜 결혼하게 됐어요?”라고 했다, 이에 이말년은 “나 사실 재혼이야“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어서 ”처음엔 게임하고 결혼했어“라고 답해 모두를 경악케했답니다.


이어진 질문타임에서 기안84가 “인터뷰 질문들이 혹시나 실례일까봐 조심스럽다”고 말하자 이말년은 “아니야. 넌 항상 실례를 했어”라고 받아쳐 폭소케 했다.

급기야 기안84가 인터뷰를 중단하자 이말년은 “포기한거 아니지? 포기하지마. 대답하는 사람은 마음속의 어두운면을 잘 안내비친다. 그래서 이 인터뷰 자체는 실패야. 넌 오늘 하루를 낭비했어”라고 말하며 기안 84를 당황하게 했다.

또 이말년은 왜 결혼했느냐는 질문에 ”(아내가) 좋다고 했다. 나 약간 예스맨이다“고 말해 아내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 침착맨의 연봉 수입은???

웹툰 작가 이말년이 유튜브 활동으로 25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10일 금융빅데이터업체 딥서치에 따르면 이말년 작가가 유튜브 관리 및 운영을 위해 만든 회사 '금병영'은 지난해 총 25억3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금병영은 이말년 작가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법인으로 2020년 5월 설립된 비상장기업이다.

이번에 공개된 매출은 유튜브 영상을 통한 수익으로 이말년 작가가 실시간 방송을 진행하는 플랫폼 트위치에서의 매출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 밖에도 광고 촬영, 외부 출연 등의 수입을 더 하면 이말년 작가의 실제 연수익은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말년 작가는 앞서 올해 초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웹툰을 할 때도 수입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유튜브) 방송 같은 경우는 광고가 붙으니까 웹툰의 몇 배가 된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작품은 성취감이 있지만 그거만 포기하면 쉬운 길로 갈 수 있다"며 "만화 언제 내냐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생각해서 내면 안 볼 거다. 재밌어야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2016년 '이말년 서유기'를 마지막으로 웹툰 연재를 쉬고 있다. 2009년 웹툰 '이말년 씨리즈'를 통해 데뷔한 이말년 작가는 현재는 '침착맨'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와 트위치에서 개인 방송을 진행하며 방송에도 종종 출연하고 있답니다.

- 프로필 이력 경력

본명 이름은?
이병건 (李秉鍵, Lee Byeong-geon)
출생 나이 생일
1983년 12월 5일 (38세)
고향 출생지
전라북도 전주시

신체 키 혈액형
179cm, 83kg, A형

학력
이리동국민학교 (전학)
고잔국민학교 (졸업)
성포중학교 (졸업)
안산동산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시각디자인과 / 학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직업
만화가, 스트리머
종교
무종교(불가지론)

가족관계
아버지 이재홍
어머니 유정원
여동생 이세화
배우자 김나영
딸 이소영(2012년생)

MBTI
INTJ#

자차
제네시스 G80, 쉐보레 말리부
법인
(現)금병영 대표
(前)이말년연구소 대표

이말년이란 필명은 항상 말년병장처럼 살고 싶은 마음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상병이 되어서도 소대 전체 막내였다고 알려져있지만 나이스게임TV 킬링캠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단순한 만화적 설정일 뿐이라고 한다.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태어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익산시로 이주하였고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도 안산시로 이주하여 살았다. 고잔초등학교, 성포중학교, 안산동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만화 동아리에 들어오려다 특유의 그림체 때문에 잘렸다는 이야기가 학생들 사이에서 전승되고 있는, 동산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전설로 통하는 인물. 2014년 교지에서 인터뷰한 적도 있다. 명사특강 때 명사로 부르려 했으나, 선생님들에게 영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는지 섭외 도중 연락이 끊겼다고 한답니다.


몇 년간 서울시 노원구 그랑빌아파트에 살았으며, 방송하는 작업실도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했으나 2015년 9월말 작업실은 정리했다. 이후 2019년 5월에 작업실 겸 방송 스튜디오를 새로 마련했다.

애향심에 나온 건지 모르지만 안산시 관련된 드립을 종종 치는 편. 예를 들어 '외길삼겹살 고잔점' 따위의 것들. 마치 메가쑈킹 만화의 '도영XX'처럼 '외길'과 안산 드립은 이말년의 특징적인 작명법이다. 그리고 이말년이 쓰는 외길대학의 캐치프레이즈는 '나를 알아주는 대학 외길대학'인데 이건 안산1대학(현 안산대학교)의 광고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안산을 표현하길 매연이 아름다운 도시라고. 작중 가끔 출연하는 스포츠 선수들은 백이면 백 '안산 매연스'라는 팀의 소속으로 등장한다. 당연한 것이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이 자리잡고 있답니다.

대한민국 웹툰 작가 중에서도 톱클래스의 인지도를 자랑하며, 야후! 카툰세상을 이말년씨리즈 하나로 먹여살렸던 경력이 있다. 이말년씨리즈 하나를 보기 위해 평소엔 접속할 일 없는 야후!에 접속하는가 하면, 댓글을 달기 위해 쓰지도 않았던 야후 계정으로 로그인했다는 독자들까지 있을 정도랍니다. 참고로 그 당시 야후 카툰세상이 얼마나 암울했냐 하면 야반도주도 하고 그림만 좋은 쓰레기 만화도있고 악플채집기도 있었다. 게다가 빈칸도 엄청 많아 넣을 만화가 없어서 그 자리에 소설을 박아 넣어서 야후 소설 세상이라는 멸칭을 듣던 시기였답니다.

그랬는데 역시나 네이버 웹툰 측에서 가만 내버려두지 않고 그의 연재 지분 50%를 낚아채더니만,[26] 2010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야후 연재를 종료하며 명실상부한 네이버 전속 작가가 됐다. 야후 웹툰이 망한 원인 중 하나가 이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이말년이나 기안이 회고하기에는 야후에서 돈을 벌었을 때는 월 50만원~60만원 주던 수준이었고, 다른 경력 있는 작가들도 다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돈을 주었다. 사실 이렇게 푸대접을 해준 것을 감안하면 망하지 않는게 이상한 셈이랍니다.

킬링캠프에서 그림을 못 그려서 홍익대학교 미대가 아닌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시각디자인학과를 갔다고 밝혔는데, 그나마도 수능 점수로 메꿔서 간 거라고 한다. 물론 미대입시 특성상 실기비율이 낮지 않지만, 하필 그날 인생그림을 그렸다고. 그렇게 잘 그릴줄 알았으면 홍대미대 실기를 봤을거라고 한다. 학과 수석 입학이라 3년 장학금을 보장받았지만, 막상 가고보니 그림 그리는 걸 배우는 시간은 얼마 안되고 이론공부만 시키니 흥미가 없어져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재수나 편입을 하자니 3년 장학금이 아까워서 꾸역꾸역 다니기로 했으나, 결국 최저학점 기준에 미달되어 장학금은 3학기밖에 못받았다고 한답니다.

- 만화가 활동 및 특징

- 데뷔 이전

아마추어 시절엔 디시인사이드에서 만화를 연재했으며,[28] 메이저로 진출한 이후로도 디씨에서 종종 활동했었다. 특히 카툰연재 갤러리에서 만화를 올리던 카연갤러였기에, 이말년의 만화에선 디씨 관련 패러디가 상당수 등장해서 디시인이라면 웃으면서 볼 수 있다. 고전게임 갤러리, 만화 갤러리에서도 가끔 출몰했으머, 웹툰 갤러리에도 자주 이런저런 글들을 남겼었다. 제갈공명전에선 삼국지 갤러리 쪽 패러디도 다수 존재했다. 그 밖에 히오스 갤러리에도 출몰했었고 하여간 자신의 관심사의 갤러리는 다 하는 듯. 그러다보니 확실히 랜선 이슈와 유행어를 최신으로 받아들이고, 또 잘 써먹는다. 마리텔 생방송에서 마리텔 갤러리 눈팅하는 걸 인증했을 정도랍니다.

마구마구 갤러리에서 신나게 놀고 마갤 관련 클럽에도 들고 어울려 내전도 하고 논 결과, 2010년 1월 27일자 네이버 웹툰에 올라간 '누구를 위해 불을 붙이나'에서 마갤 쪽 떡밥이 나오기도 했답니다.

예전에 올린 게시글에서 "마구마구를 끊던지 내 손을 잘라야겠다"라고 썼던 것으로 봐서 지독한 마덕이다. 만화 갤러리에 출몰해서 마구마구에 관한 글을 올렸을 때 어느 만갤러가 마구마구를 끊던가 손을 잘라야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물어봤더니 다음과 같은 답글이 달렸다. 손가락 하나 짤랐음. 여담으로 이말년은 하이점프캐치 패치때 밸런스를 해친다는 말과함께 분노 폭발 후 마구마구를 접는다 선언이랍니다.

이후 실제로 카드를 내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접기 위해 카드를 돌렸는데 레전드 카*가 등장해 그것을 밑천으로 하이점프캐치 능력치를 손에 넣으려 했다. 이말년에 의하면 대세에 뒤쳐질 수 없었다고... 그 밖에도 엘롯기를 패러디한 간손미를 보나, 임창용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면 야빠는 확실하다. 2011년 6월 15일자 네이버 이말년 씨리즈에도 또 마구마구 이야기가 나왔다. 이후에도 마구마구 갤러리에서 나왔던 떡밥들과 이름(갤러의 실명)을 자신의 작품의 등장인물 이름으로 넣는 등, 주기적으로 마갤을 눈팅하는 것을 보여줬답니다.

2009년 중반 휴재에 들어가면서 벌였던 이벤트 상품에 마구마구 98숀 헤어 카드가 들어있었던 것을 보면 사실 대놓고 마덕이다. 뭐 애초에 노히트 노런에 연재한 과거도 있다. 지금도 노히트노런에 가 보면 최의민 포스팅에 이말년의 이름이 남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만화의 특징

흑백 배경에 붓펜으로 대충 휘갈겨 그린 듯한 그림체가 큰 특징이다. 실제로도 그림을 휙휙 빠르게 그리는 편이지만, 은근히 꼼꼼한 기질이 있어서 배경 마무리나 세밀한 얼굴 표정을 그릴 때 시간을 많이 뺏긴다고 한다. 한컷을 그릴 때 배경과 몸뚱아리는 5분만에 그려놓고, 얼굴 표정을 맘에 들 때까지 지우고 다시 그리는데 30분 넘게 쓴다고 한다. 게다가 인물이 아무리 봐도 미형은 아니라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누구도 따라 하기 어려운 그림체 그러면서도 있을 건 다 있는 그림을 그려내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단적으로, 대가인 허영만이 이말년이 쉽게 그려내는 걸 보고 좌절했다 하는데, 그 대부분은 너무 쉽게 그림을 그려내는 환경과 기법 변화,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비판이지만 이말년의 그림이 형편없다면 그런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을 것이다.[31] 스토리도 있고 그림은 단순한 이말년은 어마어마한 그림 실력과 스토리 구성 능력, 적절한 시사 패러디를 겸비했고 만년으로 갈수록 그림이 단순해졌던, 이제는 전설이 된 만화가 고 고우영과도 상당히 공통점이 있다.


다른 특징은 다름아닌 병맛. 이말년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병맛을 베이스로 깔고 들어가는데, 독자층이 다양한 메이저 플랫폼에서는 소화하기 힘든 마이너한 인터넷 병맛 문화를 순화시키고 이를 적절히 만화에 녹여내는것에 능하다. 여기에 깨알같은 정치, 사회 풍자 요소를 담기도 한다. 그리고 중하류 계층을 나타내는 듯한 쌈마이하고 키치한 요소들[32]도 자주 등장하여 이말년 만화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네이버에서 연재한 '쓸모있는 사람' 등 김성모 패러디는 회를 거르지 않고 거의 매번 등장한다. 그 덕에 김화백은 이러한 이말년에 보답복수하는 의미로 이말년을 돌아온 럭키짱에 계말년이란 이름으로 출연시켜줬다. 원피스 등 다른 만화도 패러디하기도 한다. 바솔로뮤 쿠마의 도톰도톰 열매 능력이라든가 네이버에 연재된 '깡패 학원' 편에서 나온 깡패왕과 깡패색 패기는 해적왕과 패왕색의 패기 패러디. 10월 20일 네이버 웹툰에선 고무의 천재, 도박의 천재란 명으로, 몽키 D. 루피와 이토 카이지를 패러디했다니다.

쌈지몬 에피소드에선 아카이누와 포트거스 D. 에이스의 상하관계가 패러디되기도. 뿐만 아니라 작중 네이버 연재의 다른 웹툰인 신과함께를 패러디하기도 했다. 야후 이말년씨리즈 103화 '무거운 것이 좋아2'에서는 베르세르크의 등짝을 패러디했다. 불멸의 신병이라는 에피소드도 있는데, 이는 베르세르크 해적판 제목인 '불멸의 용병' 패러디도 나왔다.

그리고 와우 관련 패러디가 많은 것으로 봐서 와우 플레이어인 듯하다. 록타, 호드의 영광을 위해, 시간은 금이라구 친구, 공대 닌자 등. 그런데 사실 와우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블로그 안부 게시판에서 관련 질문은 넘쳐나지만 대답은 언제나 ㅋ 사실안함. 어느 글에 따르면, 아주 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예전에 한 적은 있는 것 같다. 이후 개인 방송에서 오리지널 시절에 와우를 플레이한 적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플레이했던 직업은 트롤 냥꾼, 트롤 도적이고 만렙찍고 줄구룹 좀 돌다가 접은 듯 하답니다.

사실 아래의 단어가 인기를 끌기 전까지는 이말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외길'이었다. 이말년씨리즈 초반에는 가게 이름이건 상품 이름이건 학교 이름이건 외길이 안 붙는 이름이 없을 정도.

실존하는 것들의 명칭을 부를 때 된소리로 명칭을 바꿔 부르는 경우가 잦다. 이말년의 가난의 상징 '쐬고기면', 부의 상징 무빠마, 탈모와 관련된 에피소드에 나오는 쁘로빠시아이 대표적인 예. 심지어 자신의 딸도 '쏘영이'라고 부르고 있다. ㅏ 발음을 ㅐ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감옥→갬옥 같은 식으로.

'작중 대머리 캐릭터가 매우 많이 등장한다.' 특히 남성의 경우 의사 등의 인텔리 캐릭터가 아니면 연령 상관없이 거진 대머리이다. 야후 연재 당시 '필살 마왕원정대(하)'편에서는 마왕이 쏘는 어둠의 에너지에 맞서 빛의 에너지를 쏠때 이제까지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등장한 상당수의 대머리 캐릭터들이 등장해 빛 에너지를 보태주기도 했으며(...) 네이버 연재 당시에는 탈모를 다룬 일상편에서 이말년 본인의 오너캐가 작가는 자기가 그린 캐릭터를 닮는다더니...라며 자조하는 모습도 나온다.

표지를 마지막에 그린다고 한다. 때문에 퀄리티가 들쑥날쑥하다고 한다. 여유가 없는 경우 그림자나 디테일한 요소들이 하나씩 감소할뿐더러, 구도면에서 자신 스스로도 대갈치기 방식으로 끝을 내게 된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위 첨부 그림에서 알 수 있듯 이말년의 만력은 겉으로 보기엔 그다지 좋지 못하다. 특히 방송에 출연해서 다른 게스트나 MC들의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의 개성을 잘 살리지 못해 극단적인 캐리커쳐 방식으로 가거나, 이도저도 안 될 땐 결국 이마에 이름을 쓰는 황당한 방식으로 끝내곤 한다. 하지만 동적인 연출이 상당히 뛰어나 그의 만화작품을 보면 의외로 그림을 못 그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대충 그리지만 대충 그린 것 같지 않은 그런 그림의 소유자라, 그림체 자체는 지극히 평이하지만 움직임 묘사는 기본기 이상은 갖추어져 있다.


의외로 그림을 그릴 때 상당히 수고를 들이는 편인데 선이 삐져나오거나 채색이 살짝 빈다거나 하는 것에 강박증 수준으로 예민해서 몇 번씩 확인하고 꼼꼼하게 정리를 하며 그리고, 포토샵 레이어도 밑그림과 채색, 최종 그림을 철저히 구분하고 얼굴을 그릴 때도 계속 지웠다가 다시 그리면서 20분 넘게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만 결과물이 이 모양이라 본인만 알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동료 만화가 주호민은 확대해서 보는게 아닌이상 보이지도 않는것에 쓸데없이 시간을 들인다며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작업을 한다고 이야기했답니다.

2016년 무한도전에 출연하여 본인의 그림 실력에 대한 고민을 고백하기도 했다. 자기 그림에 한계가 있으며 아마 다른 사람이 같은 내용을 그리면 훨씬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림을 그만두고 전업 스토리 작가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이후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무한도전 당시 이야기를 했는데, 촬영시 분위기는 전혀 무겁지 않았으며 그림 실력 발언도 진지한 얘기나 고민이 아니라 농담이었다고 밝혔다. 무한도전 판 악마의 편집인 셈. 이말년 본인은 본인이 그린 그림을 보고 '녀석 잘 그리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본인의 그림 스타일에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하도 사람들이 이말년의 그림 실력에 대한 농담을 많이 하고, 진짜 그림 못 그리는 거냐고 질문하는 사람들도 많다보니 구구절절 설명하기 귀찮아서 '맞아요 저 그림 못 그려요'라고 하고 다니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그림체가 한결같다고 느껴지는 이말년도 알게 모르게 그림체 변화가 있는 편인데 이말년 서유기 후반부와 2018년부터 신연재를 하고 나서는 쓰는 선이 눈에 띄게 굵어졌다. 네이버 편집부에서 모바일에서 보기 편하게 그림체와 폰트를 PC에서 보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굵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색이 없이 두꺼운 선으로만 표현하는 이말년 만화에서 선이 극단적으로 굵어지다보니 그림의 표현이 갈수록 단순해지고 있답니다.

- 前 웹툰작가 이말년?

2018년에 이말년 씨리즈를 재개한 이후, 이말년의 만화에 대한 인기는 굉장히 많이 사그라들었다. PC 독자 기준 10위 이내의 순위라 괜찮아 보이지만, 모바일 독자 기준으로 20위대 후반으로 목요일 네이버 웹툰 연재 만화 가운데 중하위권 정도이다. 본인도 침튜브에서 관련 발언을 했을 정도. 이말년 본인도 언급했했듯이 PC보다 모바일로 더 웹툰을 보는 세상에서 이는 그가 얼마나 인기가 떨어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시랍니다.

이말년씨리즈 2018의 경우 본인이 강점을 가지고 있던 삼국지 소재(여포전)와 동료 작가 주호민 관련(대머리 특별 금지법, 신과 함께의 저주) 에피소드, 그리고 딸 쏘영이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만 호평을 받았을 정도이다. 때문에 진지하게 이말년 삼국지나 육아 웹툰을 그리는 게 어떻겠냐는 독자들이 있는가 하면 트위치에서 딸과 하던 방송을 그냥 만화로 그리던 것밖에 더 되냐는 혹평도 있다. 이 부분은 본인도 인지하고 있었고, 19년에 개인 라디오 방송 진행 중 이말년씨리즈 2018에서 쏘영이 비중이 좀 많아가지고 어쩔 수 없이 폐기한 에피소드가 몇 개 있다고 밝혔답니다.

2019년 1월 복귀를 계획으로 배성재의 TEN에서도 하차했었으나 하기 싫었던 티가 역력했는지 동료 작가 주호민이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왜 해. 하기 싫은 걸 그려봤자 재미 없어"라는 팩트를 듣고서 이게 맞다고 생각, 복귀각을 9월로 연기했다고 침터뷰 진행 중 배성재에게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만화가로서 이말년의 인기 감소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웹툰 시장의 확대와 변화다. 웹툰의 절대적 갯수가 많아지고, 웹툰 소비층이 늘어나면서 예전의 병맛 및 마이너 감성이 주류였던 시절과 달리 획일화된 스토리와 그림체가 웹툰의 디폴트가 된 시대다. 애초에 이말년시리즈뿐 아니라 어떤 순수 개그툰도 웹툰 상위권을 차지하지 못하는 시대랍니다. 

독자들은 공포의 떡볶이나 갑분싸 편을 보고 이말년의 개그 센스가 떨어진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이말년 본인은 과거에 자신이 과도하게 칭찬을 받았을 뿐이고, 옛날 게 더 재미있다는 건 추억보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옛날 이말년시리즈를 읽으면, 레전드 에피소드들은 여전히 재밌지만 당시에도 뜬금없는 뇌절을 펼치거나 갑자기 끝나버리는 등, 오히려 요즘에야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라도 따라가고 있지 옛날에는 근본도 구조도 없는 그냥 낙서에 불과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물론 이말년이 나이가 들면서 조금 유해지고 조심스러워져서 순한맛이 된 것도 분명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분명 과거 추억보정도 존재하고, 시대적 상황도 다르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답니다.

이말년 본인은 공포의 떡볶이를 비롯해 이말년 씨리즈 2018의 에피소드들이 정말 재밌을거라고 생각하며 그린 것이고, 댓글 반응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의아했다고 한다. 장난으로 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냥 본인의 만화가 재미없어졌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말년이 2016년까지 연재한 이말년 서유기를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질 못하는 게 5년이 넘어가다보니 이제 이말년은 '만화가로 유명한 이말년'이라기보다 '침착맨으로 유명한 이말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실제로도 그렇다.

특히 개인방송을 만화 연재와 같이 병행하며 느꼈던 스트레스와 집중력 저하로 인해 만화가로서의 자기자신에게 많이 실망했고, 스트리머로서의 활동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점점 재연재에 대한 말도 점점 하지 않게 되었고, 2019년 10월 김풍의 결혼식 사회를 보면서 본인을 '전' 웹툰작가로 소개하기에 이르렀으며 인터넷 방송 중에도 농담반 진담반으로 '전' 웹툰 작가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전에는 틈틈히 방송중에 반 연습, 반 취미삼아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기념일이 되면 가족 그림을 종종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에는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농담처럼 언급하더니, 강동구 소재의 새 스튜디오로 이사를 온 후에는 아예 타블렛을 컴퓨터에 연결하지도 않고 구석에 쳐박아 두었다. 그림을 그릴 일이 있으면 그냥 A4용지에 그리곤 한답니다.

2020년 6월 1일 샌드박스 아재의 숲 방송에서 만화 연재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다시 만화를 그리는데 마음이 없었으나 최근에 다시 뜻이 생겼다고 한다. 복귀를 바라는 사람들도 은근히 있는 편이고, 특히 딸 소영이가 아빠의 작품을 정말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주요한 이유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2022년 6월 기준 현재까지 소식은 없다. 2022년 2월 유퀴즈 출연분과 7월 팬미팅에서의 말에 따르면, 다시 그릴 의향은 있으나 마감 작업 등 힘든 기억들이 많이 남고, 인터넷 방송으로 인한 스케쥴 문제 등으로 인해 엄두를 못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