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정규편성된 SBS 예능 '불타는 청춘' 첫방송에는 싱글 중년 이근희 홍진희 김도균 김국진 강수지 김혜선 양금석 김동규 조정현이 아름다운 섬진강 매화 마을에 모여 안티 에이징 리얼버라이어티를 시작했다.
이날 다시 만난 양금석 김도균 커플이었고 김도균은 소녀처럼 수줍어하면서도 양금석을 위해 믹스 커피를 타줬다.
전혀 다른 커피 취향임에도 양금석은 "카라멜 향기가 난다"라며 커피 향을 음미했다. 그러나 로맨틱하던 모습도 잠시, 김도균은 멤버들과 함께 놀이를 하던 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룰을 이해하지 못해 20분동안 설명을 듣는가하면 본게임에서도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여 '게임 구멍'으로 등극했다.
또한 양금석이 "늘 어둡고 시커먼 옷만 입는다. 컬러풀한 옷을 입어보라"고 했고 로커의 자존심에 가죽을 고수하려던 그는 단번에 거절하지 못하고 에둘러 거절 의사를 내비췄답니다.
하지만 결국 양금석의 압도적인 모습에 넘어가 옷을 골랐고 땡땡이 무늬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좋아해 웃음을 더했다.
양금석은 그런 김도균을 보며 "촬영 올 때마다 입고 와라. 내 생각하며"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고 김도균은 눈에 띄게 쑥스러워하면서도 "금석 님이 사주신 옷"이라고 멤버들에게 자랑해 순진한 로커의 매력을 더했다.
- 김도균 프로필 이력 경력
이름 본명은? 김도균 (金度均 / Steve Do-Kyoon Kim) 출생 나이 생일 1964년 5월 11일 (58세)
소속사 백두산엔터테인먼트 데뷔 1986년 백두산 1집 앨범 [Too Fast! Too Loud! Too Heavy!]
1964년 5월 11일 대구광역시(당시 경상북도 대구시) 남구 출생.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의 기타리스트이다.
대구에서 섬유 회사를 경영하던 김정태와 전정임 부부 슬하의 매우 유복한 가정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도균은 어렸을 때 천체물리학자를 꿈꾸며 미술과 음악에 흥미를 가진 평범한 소년이었다. 중학교 입학 후 사촌형이 치던 전기 기타에 관심을 가진 것이 계기가 되어 록 음악에 입문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록밴드 '중성자'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후 학업보다 음악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김도균은 스스로 학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와 인근 야산에서 기타 연습을 하다가 1980년 초 대구의 한 클럽에서 기타 연주를 시작하였고, 얼마 후 상경하여 4인조 록밴드 '수레바퀴'를 결성하고 이태원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백두산의 리더 유현상에게 발탁되어 밴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백두산 1집은 이전에 유현상이 발표했던 트로트곡들과 몇몇 신곡들로 이루어졌는데 그 신곡들마저 뽕끼가 넘쳐 흘러서 트로트+메탈주법이 혼재된 이도저도 아닌 음악이었다. 때문에 당시 메탈밴드들은 백두산과 같은 무대에 서는 걸 꺼릴 정도였으며 그 음악성 때문에 김도균 또한 뛰어난 실력에도 저평가를 당한다. 하지만 2집은 그야말로 헤비메탈 그 자체였고 롭헬포드 전성기를 연상케하는 유현상의 고음역 보컬과 김도균의 화려한 연주가 어우러져 상업성과 음악성 두마리의 토끼를 잡는다. 그리고 김도균은 이 시기에 한국 락씬의 최고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떨친다.
평소 국악을 좋아하던 그는 사물놀이의 강력한 리듬이 헤비메탈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고 국악+메탈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는데 그 결과물이 Center Of The Universe(1988). 타이틀곡 쾌지나 칭칭나네, 연주곡 아리랑 등 길이 남을만한 음악적 진보를 보여줬지만 녹음상태가 말도 안 될 정도로 처참했다. 이 앨범의 수록곡 Not That Kind Of Love는 훗날 3인조로 재편된 백두산 3집에 새로이 실린다.
이후 김도균은 프로젝트 록 인 코리아(Rock in Korea)[4]에 참여하는데 이 때 김도균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연주를 가감없이 들려준다. 그리고 함께 호흡을 맞췄던 임재범과 영국으로 건너가 사랑Sarang이라는 밴드로 활동한다. 이 때 주 레퍼토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메탈곡들이나 한국에서 활동하던 곡들이었는데 평범한 메탈사운드에 현지의 반응은 시원찮았고 이에 고심하던 김도균은 자신의 무기인 가야금 주법을 선보인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상당한 반응[5]에 고무되어 자신의 길은 국악과 메탈의 크로스오버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답니다.
영국에서 함께 활동하며 세계무대를 꿈꾸게 된 김도균과 임재범은 귀국 후 새로운 밴드를 구상한다. 그리고 리듬파트에 김영진(베이스), 유상원(드럼)을 영입해 슈퍼밴드 아시아나를 결성한다. 당시 이 그룹은 락씬에 굉장한 화제를 몰고왔는데 멤버들이 전부 국가대표급의 실력자들에다가[6] 세계진출을 목표로 영국 스튜디오에서 현지인들과 작업을 했기 때문. 가사도 한 곡 제외하고(Missing You) 전부 영어에 음악스타일도 한국 특유의 느낌을 쏙 뺀 정통 브리티쉬 하드록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메탈이 끝물이던 시절이었고 더구나 이들이 추구하던 음악스타일은 굉장히 올드한 것으로 취급되던 때라 상업적으로 완전히 실패하고 만다. 여기에 레코드사 도산으로 사실상 활동조차 해보지 못하고 종료. 그나마 회자되는 활동은 일본의 메탈그룹 라우드니스 내한 때 오프닝에 섰던 것이다.
이후 1999년 김도균 그룹을 거쳐 2009년부터 다시 록 음악으로 돌아온 유현상과 함께 백두산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에는 김태원, 신대철과 함께 D.O.A.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2010년부터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했고 2011년 KBS의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TOP 밴드 시즌1》에서 코치를 맡았다. 젊은 시절부터 록 음악과 국악의 결합을 계속 탐구하고 있답니다.
흔히 대중들에게 부활의 김태원, 시나위의 신대철과 함께 '대한민국 3대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과거에는 속주로 신대철과 자웅을 겨루던 인물이었다.
기타 실력을 기르기 위해 지리산 위에 올라가서 피크 박스 한 통을 다 비울때까지 내려오지 않았다는 전설 혹은 허풍으로 유명하다. 이 전설에 옵션으로 붙는 얘기론 피크가 피킹 한번에 갈려나갈 정도로 내구성이 꽝이라서 생각보다 금방 하산했다는 얘기도 있다.
잉베이 말름스틴을 특히 좋아해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속주를 연습하게 되었다고 하며, 바로크 클래식음악과 메탈을 융합한 네오 클래시컬 메탈처럼 국악과 메탈을 결합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실제로 산조나 쾌지나 칭칭 나네 같은 국악 곡을 일렉기타로 커버하기도 했다. 국악과 메탈의 융합은 김도균뿐만 아니라 한국 록 뮤지션들 사이에서 자주 시도했던 것이다.
- 연주력 실력은???
오해가 없도록 미리 써두자면, 80년대의 기타 실력은 주로 속주와 화려한 손가락 움직임 잉베이 맘스틴이 불러온 속주 광풍 때문에 1980년대 내내 한국의 록 음악 팬들 사이에선 무조건 빨리 치는 놈이 최고다라는 인식이 팽배했다.이게 사그라든 건 너바나를 선두로 얼터너티브가 등장하면서부터다. 그래서 현재의 관점이나 평가로 보면 80년대의 3대 기타리스트들의 과거 연주들은 빨리 치는 면 이외에는 여물지 못한 측면이 있었고, 그 이후에는 속주마저도 이후 세대들에게 밀린 것은 사실이랍니다.
어릴적부터 기타를 만져왔던 신대철은 속주에 크게 목을 매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실제 속주 능력은 탁월했고, 김태원의 경우는 속주 이외의 연주적 기량을 높게 쳐줄수는 없었는데 김도균은 속주의 측면보다 표현력 면에서 단연 당대 최고였고 다른 부분에서도 우수했기에 80년대 기준으로 보면 순수 기타 실력으로 3인을 비교했던 것이다.
다만 총체적으로 보았을때에도 기타리스트로서의 연주력은 역시 김도균을 가장 높게 쳐줄 수 밖에 없다. 사실 3인의 행보를 본다면 3대 기타리스트라기보다는 3대 밴드 리더에 가까운데, 부활과 시나위를 몇십년 동안 유지하며 밴드의 리더 및 작곡가로서의 성격이 더 강했던 김태원이나 신대철에 비해. 백두산에서는 보조적인 역할을, 그외 자신 중심의 밴드의 경우 오래 가지 못했던 김도균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연주가로서 기량을 단련하고 유지했던 기간이 둘에 비해 훨씬 길다. 전성기 기준으로도 연주력에 있어서는 3인 중 최고라는 평이 있었는데, 현재 시점에서는 기타리스트로서의 기량은 압도적입니다.
- 여담들!!
예능 프로에도 게스트로 종종 나온다. 거칠 것 같은 헤비메탈 기타리스트의 인상과 달리 독특하고 4차원적인 토크를 선보인다. 게다가 욕이나 다른사람에게 험한 말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착한 헤비메탈 기타리스트랍니다.
특이하게도 국제 연애 경력이 꽤 많다고 한다.
감정을 기타로만 발산하는 스타일이며 현재까지도 하루에 2~3시간씩 꾸준한 연습을 할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는 뮤지션. 주변 사람들 말로는, 이렇게까지 꾸준히 연습을 하는 뮤지션이 없다고 할 정도.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에 몇시간씩은 기타연습을 한다고 한다.
2010년 공감토크쇼 놀러와에 출연했다. 이날 공연 도중 부상을 입었는데 사촌동생이 응급치료를 해주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 사촌동생이 전혜진이라고 한답니다.
약간 4차원적인 면이 있고 거기에 키도 엄청큰데다(184~5cm) 파마까지 하고 조용한 성격이다보니 언뜻 보면 기인같기도 하다
2011년 MBC스페셜 나는 록의 전설이다에 출연하여 자가용으로 1994년식 엑센트를 타고 다니며 동네 분식집에서 김치볶음밥을 먹는 장면이 나왔는데, 본인은 락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평범하게 산다는걸 보여주려는 의도였으나 방송에서는 락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힘들게 살고있다는 듯이 편집되어 불쾌했다고 한다. 원래 좋아하는 메뉴인지 2013년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을 때에도 김치볶음밥으로 외식을 하는 장면이 나왔답니다.
"대장암 가능성" '불타는 청춘' 김도균, 건강검진 중 용종 발견 '긴급 수술' - 2019.02.06
'불타는 청춘' 가수 김도균이 대장암 가능성을 보여 긴급 수술을 받았다.
지난 5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서는 뜻밖의 건강검진 결과에 충격을 받은 김도균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김도균이 건강검진 절차를 마친 후 담당 의사에게 들은 첫 번째 말은 "평소 건강에 신경을 안 쓴 것 같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김도균은 "여태까지 신경을 못 썼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가장 문제가 됐던 건 대장 내시경이었다. 작은 용종들은 다 제거했다. 맨 마지막 S결장 쪽에 큰 용종이 있는데 제거를 안 했다. 출혈이 나게 되면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태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모양을 봐서는 단순 양성 용종은 아닌 것 같고 적어도 고도 선종이라고 해서 대장암으로 넘어가기 직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옆에 있던 김광규, 최성국도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김도균은 다른 병원으로 이동해 3cm 크기에 달하는 용종 제거 수술을 마쳤다. 담당 의사는 김도균에게 "무사히 용종을 제거했다. 재수술을 통해 모두 깔끔하게 제거했다"고 전했답니다.
기타리스트 김도균 "90세 母 별세, 영상 통화가 마지막" - 2022.07.01
'아침마당' 김도균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1일 방송된 KBS1 교양프로그램 '아침마당'에서는 '노후에 난 어디서 살지'라는 주제로 꾸며져 기타리스트 김도균이 출연했다.
이날 김도균은 노후에 병세권(병원+역세권) 근처에서 살고 싶다고 밝혔답니다.
이어 "저번에 방송에 나왔을 때 어머니가 90세라고 말했다. 이후 어머니께서 소천하셨다"며 "어머님이 다리를 못 쓰셔서 요양병원에서 누나의 보살핌을 받았다. 갑자기 위독해져 응급실로 옮겨졌고, 저와 영상으로 통화를 했다. 다음날 내려가는 기차표를 끊었는데, 그날 새벽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김도균은 "(노후에) 급하면 근처 병원으로 달려가 서비스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머니도 병원이 근처에 있었기에 조치를 받고 저랑 통화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답니다.